한국일보 > 연예뉴스

"첫 악역이라 많이 낯선가요? 연민을 담아 표현하려 애썼죠"

등록 : 2018.09.22 04:40

수정 : 2018.09.22 08:14

영화 '협상' 현빈

현빈은 “영화 ‘협상’에서 계산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했다”며 “동료 배우의 에너지와 부딪혀 시너지를 낼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현빈(36)은 매우 노련한 협상가다. 그의 협상력은 빼어난 연기에서 나온다.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설득하고 감화시켜 기어이 극장으로 불러내고야 만다.지난해에는 영화 ‘공조’와 ‘꾼’으로 각각 781만명과 401만명을 동원했다. 둘을 합쳐 1,182만명. 요란하지 않게 실속을 챙겼다.

영화 ‘협상’에서 그는 또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인질극을 벌이는 무기밀매업자 민태구 역을 맡아 관객을 상대로 지능적인 심리싸움을 펼친다. 협상으로 무엇을 얻어내려는지 속내를 감춘 채 협박과 회유로 스크린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현빈의 맞은편에는 경찰청 소속 협상전문가 하채윤을 연기한 손예진이 앉았다.

민태구와 하채윤은 화상으로 대화한다. 현빈과 손예진도 모니터 속 상대를 바라보며 연기해야 했다. 현빈에게는 첫 악역 변신이자, 처음 경험하는 독특한 촬영 방식이었다. 최근 만난 현빈은 “나만의 표현 방식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꼈다”며 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을 가뒀던 반듯한 이미지를 훌훌 벗어 버려서일까, 어려운 도전 과제를 무사히 마쳐서일까.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에서 여유와 자신감이 묻어났다.

인질극을 벌인 무기밀매업자로 변신한 현빈.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현빈이 악역이라니 놀랐다.

“그렇게 낯설었나(웃음).”

-악역이지만 사연이 기구하더라.

“그래서 연민을 품는 게 중요했다. 연민의 감정이 민태구를 완성한 거 같다. 그게 아니었으면 그냥 나쁜 놈이 됐을 거다.”

-이유 없는 악역이었어도 선택했을까.

“실제로 상상해 보기도 했는데, 밑도 끝도 없이 극악한 인물이었어도 굉장히 흥미로웠을 거 같다. 언젠가 그런 역할에 도전하고 싶다.”

-악역은 어떤 매력이 있나.

“착한 인물보다 대사나 행동에 제약이 덜하다. 마음껏 내질러도 허용되는 폭이 넓은 거다. 확실히 재미가 있다.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이종석) 감독님도 많이 열어 주셨다. 그래서 더 자유분방한 인물이 된 것 같다.”

-영화에 어떤 아이디어가 반영됐나.

“눈에 보이는 소품을 많이 바꿨다. 첫 촬영 날 민태구의 공간을 둘러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더라. 민태구가 인질을 무기 삼아 협상 테이블에 사람들을 멋대로 불러내듯이, 소품과 공간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장악하고 싶다는 생각. 애초 민태구가 모니터 앞에 앉는 의자는 팔걸이가 있고 바퀴도 달린 것이었는데 딱딱한 나무 의자로 교체했다. 연기하면서 그 의자를 발로 차거나 던지기도 했다. 예전에 취미로 지포라이터를 모은 적이 있는데, 수집품 중에서 민태구에 어울릴 만한 걸 골라서 영화에 활용했다.”

-작은 소품까지 챙길 만큼 시야가 넓어졌나 보다.

“연기를 할 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은 욕심이 커져서 그런 것 같다.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 배우는 없다. 아쉬움을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고 다양한 표현 방식을 찾아내는 거다. 일례로 하채윤이 지켜보는 화면 속 민태구의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동선을 과감하게 변형해서 공간감이 느껴지도록 의도했고, 의자에 앉는 자세와 말투도 조금씩 달리했다.”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으면 감정이 소진돼서 더 좋은 표현을 얻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내 경우 리허설을 할 때 미리 구상해 온 연기 톤을 상대 배우와 맞춰 보면서 가장 적합한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촬영 때 전력투구를 한 다음, 부족하거나 아쉬운 지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완하면서 매만진다.”

현빈이 오랜만에 다작 행보에 나선다. 추석에 영화 ‘협상’을 개봉하고 10월엔 새 영화 ‘창궐’을 선보인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한창 촬영 중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손예진과 연기 호흡은 어땠나.

“직접 대면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보고 있는 작은 모니터 바깥으로 에너지가 확 뿜어져 나오더라. 하채윤이 순간적으로 흔들려서 민태구에게 욕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예진씨가 숨을 안으로 집어넣어 표현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 장면을 좋아해서 촬영장에서 종종 흉내내곤 했다(웃음).”

-한결 편안해 보인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웃음). 요즘엔 촬영하는 게 유독 즐겁다. 새로운 소재에 대한 호기심도 샘솟는다. 여유가 생긴 만큼 고민도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이 결국엔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거라 믿는다.”

-고민이 깊어져서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나.

“당연하다. 내 연기에 만족하지 못해서 힘든 적도 있고, 이 직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위축된 적도 있다. 배우는 외로운 직업이다. 연기엔 모범 답안이 없으니까 혼자 고독하게 싸워야 한다. 조언을 구할 수는 있지만 결국 스스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힘든 순간을 잘 극복해 온 것 같다. 연기를 떠나서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왔구나 싶다.”

-어디서 삶의 위안을 얻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통하는 우리만의 공감대가 묘한 위안이 된다. 나 역시 관객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 단 1분 1초라도 좋으니 함께 웃고 울며 교감하고 싶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SBSㆍ2010)과 ‘내 이름은 김삼순’(MBCㆍ2005), 영화 ‘공작’(2017) 등에서 짜릿한 성공을 경험했다. 흥행에 초연해지나, 아니면 더 욕심이 생기나.

“촬영이 완료되면 내 몫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흥행은 선물 같은 거다.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땐 실패에서 배우고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물론 ‘협상’이 흥행하면 좋겠다. 다음달에 개봉하는 영화 ‘창궐’에 바통터치를 잘 해 주고, 그 기세를 지금 촬영하고 있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까지 이어갔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잘 안 되면 ‘현빈 왜 또 나왔어’라는 말을 들을까 봐 걱정된다(웃음). 같이 개봉하는 다른 영화들도 함께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상부상조해야 다 잘되지 않겠나. 추석 경쟁작 중에선 어떤 영화를 보고 싶나.

“음… 나는 시간 관계상 ‘협상’만 보겠다(웃음).”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최근뉴스

HI#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