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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지관 박충선 “세치 혀로 회 뜨듯 대사 소화”

등록 : 2018.10.17 10:00

영화 ‘명당’에서 계략에 능한 지관 정만인을 연기한 배우 박충선은 “관객에게 인물을 설득하기 위해 시나리오에 나오지 않은 과거의 삶을 연구했다”며 “무심코 지나가는 대사에도 당위와 진정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화 ‘명당’이 개봉하기 전, 그의 존재는 꽁꽁 숨겨져 있었다. 포털사이트 영화 페이지에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영화를 본 뒤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서 깨달았다. 그가 ‘명당’의 비밀병기였다는 것을. 그렇게 배우 박충선(54)을 눈에 새겼다.

‘명당’은 관객수 207만명에서 멈췄지만 박충선은 이제 시작이다. 적어도 207만 관객에게는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됐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박충선은 “잘해내고 싶어 욕심 낸 역할인데 주변에서 ‘그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는 평가를 받아 고맙고 기뻤다”고 살며시 미소 지었다.

조선 말기를 배경으로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과 왕족 흥선군(지성)이 천하명당을 두고 벌이는 암투를 그린 이 영화에서 박충선은 세도가 김좌근(백윤식)ㆍ김병기(김성균) 부자를 배후에서 조력하는 지관 정만인을 연기한다. 박재상과는 대립하고 흥선군과 김좌근의 욕망을 추동하면서 풍수로 국운까지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제작사가 건넨 시나리오를 읽고 박충선이 먼저 “정만인 역할을 맡겨 달라”고 청했다. 눈길이 그리로만 향했다. 정만인에 낙점되고 나서는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아서 소소한 만남도 피했다. 60㎏이던 마른 몸에서 5㎏을 더 덜어냈다. 살을 빼니 눈빛에 힘이 실렸다. “배우이니까 한번 해보자, 여한이 없도록 나를 쏟아붓자,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정만인은 ‘다크나이트’의 조커처럼 악마적인 웃음으로 극을 장악하며 관객을 소름 돋게 만든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천하명당은 한 눈에 알아봐도 자신의 운명은 알지 못했던 정만인의 허망한 죽음은 인간 탐욕의 덧없음을 웅변한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정만인의 야비한 계략에 휩쓸린 권력가들은 욕망을 향해 돌진한다. 하지만 박충선은 “정만인을 악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만인은 정의롭지는 않아도 자신만의 철학을 공고하게 다진 인물입니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또 다른 김좌근이 안 나타날 거 같으냐’ ‘사람은 죽어도 땅은 영원하다’는 대사만 봐도 그가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성을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정만인의 진정성과 당위성을 충실히 전달하는 데 목표를 뒀습니다.”

박충선은 눈빛을 송곳처럼 벼리고 벼렸다. “상대의 눈을 마주보는 게 아니라 시선이 눈 너머까지 꿰뚫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의 말마따나 “세 치 혀”로 빚어 낸 대사들은 “마치 회를 뜨듯 예리하게” 극중 상대를 벤다. “김좌근이 능구렁이라면 정만인은 독사, 김병기가 식칼이라면 정만인은 회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촬영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꼈고 매 순간 행복했습니다. 팽팽히 대립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도 속으로는 짜릿한 쾌감에 웃고 있었어요.”

영화에서 명당 자리로 ‘헌릉’이 자주 등장하는데 박충선의 발음이 유독 귀에 쏙 들어왔다. 그는 헌릉을 ‘헌능’이 아닌 ‘헐릉’으로 또렷하게 말했다. 신라를 ‘실라’로, 천리를 ‘철리’로, 대관령을 ‘대괄령’으로 발음하듯, 헌릉의 발음도 ‘헐릉’이 맞다. 이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자 박충선이 쑥스럽게 웃었다. “연극을 하던 시절부터 장단음과 경음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예전 선배들에게 많이 혼나면서 배웠어요. 지금도 정확하지 않은 발음은 반드시 사전을 찾아봅니다.”

박충선은 “연기에 목말랐다”며 “더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의 단단한 내공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한 길을 걸어 오면서 다져졌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연극 잘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극회에 ‘스카우트’돼 무대에 서면서 연극에 빠졌다. 군에 다녀온 뒤 1988년 스물여섯 살 나이에 뒤늦게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다시 들어갔다. 1989년에는 국내 최초로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16mm 장편 극영화로 만들어 1990년대 초반 대학가에 혁명 기운을 불어넣은 ‘오 꿈의 나라’에 주요 배역으로 출연하며 처음 카메라를 경험했다. 졸업 뒤엔 대학로로 갔지만 원하는 만큼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나이가 많아서 극단에도 못 들어갔어요. 보따리 장수처럼 떠돌며 무대에 올랐죠. 제대로 조련을 받지 못한 아쉬움이 커요.”

방황하던 그를 카메라가 다시 불렀다. 1995년 ‘영원한 제국’으로 상업영화에 입문한 이후 ‘꽃잎’과 ‘축제’(1996) ‘하면 된다’(2000) ‘혈의 누’(2005) ‘블라인드’(2011) ‘내 심장을 쏴라’ ‘소수의견’(2015) ‘궁합’(2018) 등 50편에 가까운 영화에 얼굴을 비쳤다. 이름보다는 ‘그 배우’로 기억되는 작은 역할이었다.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2015)에서 연기한 황정음 아빠처럼 그나마도 수더분한 서민 역할만 주어졌다. 지금 20대는 10여년 전 KBS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2002~2004)와 ‘마법전사 미르가온'(2005)의 마패를 가장 먼저 떠올릴 테다. “그 드라마를 보며 자란 아이들에게 빚을 졌어요. 지금도 많이 알아봐 주는데 마패 이후로 새로운 걸 보여주지 못했어요. 책임감도 느낍니다.”

그래서 박충선은 “늘 타석에 서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명당’을 계기로 더 다양한 역할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촬영장에 자주 가는 배우가 돼야죠. 때로 삼진 아웃도 당하고, 희생 번트를 칠 때도 있겠지만, 타석에 계속 서야 안타도 칠 수 있고 득점도 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글ㆍ사진=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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