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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프린세스 메이커’였는데... ‘흥행 공식’ 깨고 우뚝 선 ‘SKY캐슬’

등록 : 2019.01.20 17:58

수정 : 2019.01.20 18:01

시청률 22.3% ‘비 지상파’ 시청률 최고 기록 경신

‘한류 스타, 막대한 자본, 로맨스’ 없이 흥행 홈런

입시 둘러싼 속물 근성 들추고 스릴러적 영상으로 호기심 자극

‘지상파 패싱’으로 드라마 시장 환경 변화도 보여줘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부모들이 혜나(김보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며 싸우는 장면. 시청률 1%대로 시작한 드라마는 송곳 같은 입시 풍자와 상류층의 허욕을 꼬집는 코미디적 연출로 입소문을 타 시청률 20%를 넘어섰다. 워낙 화제가 되다 보니 최근엔 ‘17~18회 대본 유출 사고’까지 벌어졌다. 제이콘텐트리 제공

청춘스타도 톱스타도 나오지 않는다. 유명 작가가 쓴 작품도 아니다. 시청자 마음을 뒤흔들 로맨스도 없다.JTBC 드라마 ‘SKY캐슬’은 ‘본방 사수’를 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남편은 왕으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들여다 본다는 드라마의 인터넷 소개 글을 보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흔해 빠진 상류층 풍자로 ‘막장 드라마’의 길을 걷게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오히려 컸다. 예상대로 지난해 11월 23일 첫 방송 시청률은 1.7%에 그쳤다.

◇‘미스터 션샤인’ 제작비 6분의 1의 승리

시작은 미약했던 ‘SKY캐슬’이 방송가에 새 역사를 썼다. 종합편성(종편)채널과 케이블채널 등 지상파 아닌 채널로서는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지난 19일 방송된 ‘SKY캐슬’은 22.3%(닐슨코리아 집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2017년 tvN 드라마 ‘도깨비’가 세운 기존 최고 기록(20.5%)보다 1.8%포인트 높은 수치다. ‘SKY캐슬’은 종방을 2회 남겨두고 극 중 인물들의 갈등이 극에 달해 시청률 기록을 자체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SKY캐슬’의 성공은 방송가에서 ‘작은 드라마의 기적’으로 통한다. ‘SKY캐슬’의 제작비는 약 75억원. 지난해 최고 화제 드라마였던 ‘미스터 션샤인’(430억원)의 6분의 1 정도가 쓰였다. ‘SKY캐슬’이 ‘막강한 자본과 한류 스타 캐스팅 그리고 로맨스’란 기존 드라마의 흥행 공식을 깨고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고급 빌라 입주민까지 독서토론을 하는 장면. 제이콘텐트리 제공

◇예술대 비리 꼬집은 ‘밀회’ 보다 더 큰 폭발력

‘SKY캐슬’은 대학 입시를 둘러싼 우리의 ‘민낯’을 보여줘 인기다. 내신 관리를 위해 자식의 친구에 돈을 주고 수행평가를 맡기는 몰염치한 부모의 모습은 ‘막장’ 같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시 80%, 정시 20%를 선발하는 대입 구조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며 생긴 부조리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 교수 차민혁(김병철)은 자신의 몸보다 큰 피라미드를 거실에 두고 자식들에 ‘저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되뇐다. 이 장면은 성적 만능주의에 함몰된 일부 ‘386세대’의 자화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드라마는 시청자 대부분이 겪거나 겪어야 할 입시전쟁을 다루며 보편성을 확보했다. 예술대학의 입시 비리와 상류층의 허욕을 풍자한 JTBC 드라마 ‘밀회’(2013ㆍ최고 시청률 5.4%)보다 ‘SKY캐슬’이 더 대중적 폭발력을 내고 있는 이유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가 보여준 광기 어린 입시 행태에 시청자들 대부분이 도덕적으론 당연히 권선징악을 원하면서도 사적으론 ‘내 자식이라면?’이란 욕망에 갈팡질팡하게 되기 마련”이라며 “교육을 소재로 인간의 속물 근성을 건드려 드라마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딸을 맡긴 입시 코디네이터가 학교 시험 문제를 빼 내 딸이 100점을 맞았다.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JTBC 드라마 'SKY캐슬'은 입시 문제에 도덕과 욕망 사이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는 부모들의 속물 근성을 현실감 있게 다룬다. 제이콘텐트리 제공

◇중의적 뜻 담은 ‘SKY캐슬’

기획 단계에서 드라마의 제목은 원래 ‘프린세스 메이커’였다. 하지만 유현미 작가와 제작진은 뒤틀린 모성애를 넘어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SKY캐슬’로 제목을 바꿨다. ‘SKY캐슬’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거주하는 고급 빌라촌 이름이다. ‘SKY캐슬’의 김지연 책임프로듀서는 “대본엔 한글(스카이)로 돼 있었지만 (서울ㆍ고려ㆍ연세대를 일컫는 등) 중의적 의미를 위해 영어로 바꿔 ‘SKY캐슬’로 정했다”고 했다.

유 작가는 3년 전부터 ‘SKY캐슬’을 기획했다. 입시를 치른 자녀를 둬 대학 입시 소재에 관심이 컸다고 한다. KBS 2부작 드라마 ‘고맙다 아들아’(2015)에서도 수능을 앞둔 자녀를 둔 두 집안의 갈등과 애환을 다뤘다. 유 작가는 SBS 드라마 ‘신의 저울’(2008)에선 사법 권력의 부정을, KBS 드라마 ‘골든 크로스’(2014)에선 연예계 이면의 성폭력 문제를 꼬집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유 작가는 작품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꾸준히 보여줬다”며 “그런 시대적 문제 의식이 이번에 빛을 본 것”이라고 평했다. 유 작가는 드라마 대본 읽기 첫 자리에서 “이 드라마로 대한민국 한 가정이라도 살렸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유 작가의 대본은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세련된 연출을 만나 완성도를 더했다.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방황하는 아들 영재(송건희)에 화가 나 격노한 아버지 수창(유성주)의 모습. 총을 들고 부자간의 대립을 보여준 모습은 자극적으로 비친다. 하지만 드라마는 스릴러 영화적 연출로 긴장감을 잇기도 한다. 김지연 총괄프로듀서는 "카메라 앵글에 대한 회의를 거듭하며 장르물적 특성을 살리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제이콘텐트리 제공

◇지상파 떠나는 작가들

‘SKY캐슬’의 성공은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의 위기를 보여준다. 제작자들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비(非) 지상파 방송’을 염두에 두고 기획됐다. 뒤틀린 입시 준비의 비극을 좀 더 파격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상파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대한 방송계의 회의적 시선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인기 작가들의 ‘지상파 패싱’은 요즘 추세다. 김은숙 작가는 최근작인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을 모두 케이블채널 tvN을 보유한 CJ E&M과 손잡고 찍었다. 김은희 작가는 25일부터 신작 ‘킹덤’을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업체(OTT)인 넷플릭스에서 선보인다. 3년 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만들었던 김영현ㆍ박상현 작가도 CJ E&M으로 건너가 올해 신작 ‘아스달 연대기’ 방송을 앞두고 있다. 지상파는 평일 미니시리즈 기준 1회 제작비 예산이 4~5억 원대로 정해져 있다. 지상파와 달리 비 지상파는 예산 운용에 자유롭다.

대형 드라마 제작사에서 10년 넘게 작품 기획을 한 PD는 “유명 작가들은 ‘비 지상파 편성’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작품에 투자할 생각이 없는 걸로 알고 오히려 서운해 한다”며 “예산과 소재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쫓아 유명 작가들이 지상파 밖으로 몰리고 있다. 지상파 편성 특수는 옛말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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