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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다니며 빚어낸 울림’… 카더가든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등록 : 2019.02.18 04:40

SBS ‘더 팬’ 우승자 카더가든

노래 ‘그대를 일으켜주면’… “위로가 됐다” 폭발적 반응

인디 음악계선 이미 유명 창작자… “더 소통하고 싶어 경연에 출연”

가수 카더가든의 목소리는 6년 전 데뷔 당시와 비교하면 탁해졌지만 더 웅숭깊어졌다. 그는 “술과 담배의 덕”이라며 웃었다. 서재훈 기자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은 2011년 제대 후 바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인천 삼산동 인근 고시원에서 살며 식당 설거지 일부터 시작했다.그는 버스 손잡이를 만드는 공장에서도 일했다.

2년 넘게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사막’이었다. 꿈을 향한 자신감은 메말라갔고, 삶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사내의 꿈은 가수였다. 그는 늪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을 곡에 담았다. 제목은 ‘그대 나를 일으켜주면’이었다.

“메마른 새벽에 검은 고요 속에도 그대 나를 일으켜주면~”. 길거리에서 힘없이 쓰러지려는 아이의 손을 잡아준 엄마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일으켜 세워줬으면 하는 간절함을 담아 쓴 곡이었다.

가장ㆍ취준생 울린 노래

1절만 써둔 미완성 곡의 악보를 그는 지난해 다시 꺼내 완성했다. 못다 핀 꿈을 이루러 나간 SBS 음악 경연 프로그램 ‘더 팬’에서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방송에서 사내가 이 곡을 부르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체통을 지키려 눈물 나는 걸 필사적으로 참고 들었다’는 가장부터 ‘곡이 큰 위로가 됐다’는 취업준비생의 눈물겨운 공감 사연들이 온라인에 쏟아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었다.

‘그대 나를 일으켜주면’을 발판 삼은 그는 ‘더 팬’에서 지난 9일 우승자로 지목됐다. 그의 노래가 멜로디를 넘어 시청자에게 누구나 겪을 법한 고된 삶의 이야기로 다가간 덕분이었다. 주인공은 인디 뮤지션 카더가든(본명 차정원ㆍ29)이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외국에서 사는 부모님 또래의 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타지에서 오랜만에 한국 노래 듣는데 위안을 받았다고요.” 15일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그는 “내가 소외되고 약했던 적이 있었고 그 경험에서 쓴 노래”라 많은 이들이 노래에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9일 방송된 SBS 음악 경연 프로그램 ‘더 팬’ 결승 무대에서 카더가든(오른쪽)이 경합을 벌였던 비비의 축하를 받고 있다. SBS 제공

장혜진이 생면부지 후배 찾은 이유

‘더 팬’은 유명인이 아직 뜨지 못한 가수를 추천한 후 경연을 시작한다. 카더가든을 무대로 이끈 건 가수 장혜진이었다.

같은 소속사도 아닌 둘의 인연은 특별했다. 카더가든과 장혜진은 2015년에 처음 만났다. 장혜진이 생면부지의 22년 후배를 먼저 찾았다. 미용실에서 흘러 나온 카더가든의 노래 ‘식스 투 나인’(2014)을 우연히 듣고 난 뒤였다. 장혜진은 그의 날카로우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에 단숨에 사로 잡혔다. 기존 한국 가수에게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2013년 데뷔한 카더가든은 인디 음악계에선 이름난 창작자였다. 밴드 혁오의 멤버인 오혁을 비롯해 가수 선우정아, 래퍼 로꼬 등과 합작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독특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개성 있는 음악을 선보여 마니아층에서도 입소문이 났다. 그런 그가 ‘더 팬’에 출연한 데는 “더 많은 사람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싶은 갈증”이 컸다. 반복되는 창작의 틀을 깨고 싶은 바람도 작용했다. 경연 1회전에서 ‘홈 스위트 홈’을 불러 탈락할 뻔했던 경험은 그에게 ‘보약’이 됐다. “제가 왜 떨어져야 했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방송 후 무대에 대한 네티즌 평가를 보고 깨달았죠. 그간 제가 얼마나 틀에 갇혀 소수를 위한 음악을 만들어왔는지를요.”

다양한 삶 깃든 ‘아파트’ 같은 음악 꿈꾸며

카더가든은 2013년엔 메이슨더소울이란 예명으로 활동했다. 너무 흑인 음악의 분위기가 강해 2016년부터 카더가든으로 이름을 바꿨다. 성의 차(Car)와 이름의 정원(The garden)을 영어로 변환해 만든 활동명으로 그의 둘도 없는 음악지기인 오혁이 만들어 줬다.

이름 따라 음악도 변했다. 레게 머리를 한 채 리듬앤블루스(R&B)스타일의 ‘버스 스톱’(2013)을 불렀던 사내는 ‘섬으로 가요’(2017)에선 서늘한 록 음악을 시도했다. 꾸준히 시도한 음악적 변주는 그의 자산이 됐다. 카더가든은 ‘더 팬’에서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의 ‘명동콜링’을 원곡과 180도 다른 분위기로 편곡해 불러 반향을 낳았다.

카더가든의 양팔엔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영국 록밴드 아틱 몽키스의 앨범 ‘AM’ 표지 이미지와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이선ㆍ조엘 코엔 형제 감독의 얼굴 등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그의 창작에 영감을 주는 예술가들이다. 평소 유쾌하기로 소문난 그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을 끼고 산다. 가사를 쓸 때 참고하는 책이라고 한다.

카더가든은 2년 전 앨범 ‘아파트먼트’를 냈다. 그의 음악은 아파트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 쉰다. ‘88만원 세대’인 그는 “매일 토해내는 젊음 누군가 알아주길”(‘비욘드’)이라고 아우성치기도 하고, 혐오의 시대에 “내 모든 순간을 여린 빛으로 감싸”(‘투게더’)주길 바라며 화합을 노래하기도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이었다는 카더가든은 더 많은 이야기가 깃들 그만의 ‘아파트’를 머릿속으로 짓고 있다.

“3~4월 사이에 신곡을 낼 예정이에요. 9월 정규 앨범 발매를 목표로요. 이젠 곡의 주제를 넓혀보려고요. 가사 쓰는 게 어려워지겠지만 너무 기분 좋은 부담이니 해 봐야죠.”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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